[아픔, 예술로 위로하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아픔은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심리적인 불안감을 주게 되지요.
어지러운 시국와 지속적인 경제불황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는 시기.

아름다운 예술작품 속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고통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야수파의 대표 화가인 앙리 마티스는 법률사무소에서 서기로 일하다 심한 복통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기분전환을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화가로서의 길을 선택하여 강렬한 색채와 개성적 표현으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다시 기관지염 및 결장암 수술과 그 후유증으로 수전증이 생겨 더이상 붓을 잡을 수가 없었고, 
붓을 대신하여 종이를 오려 붙이는 콜라쥬 작품활동을 하는 열정을 보이며 제2의 예술인생을 맞이하며 사람들에게 극찬을 받았습니다.


-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The Dance, 1910,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Blue Nudes, a series of blue painted paper cutouts executed in 1952








-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프랑스의 인상파로서 빛나는 풍부한 색채감으로 감동을 주는 화가입니다. 
그 역시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전체적인 화풍이 변하게 되었는데, 
굳어진 손가락에 연필과 붓을 고정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관절염으로 인한 고통으로 붓터치가 점점 무디고 거칠어져 졌음에도 마지막까지 작품활동의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The Large Bathers, 1887, Philadelphia Museum of Art








-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Bathers, 1918, Barnes Foundation, Philadelphia














-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추상회화의 선구자이자 신조형주의의 창시자인 몬드리안은 심한 강박증과 결벽증의 소유자였습니다. 
황금비율과 수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한 그의 작품은 집착과 강박증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완벽주의적 성격과 일치하였습니다.
몬드리안의 기하학적이며, 강렬한 대비의 표현은 건축과 디자인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Composition II in Red, Blue, and Yellow, 1930









-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인상파 양식의 창시자로서 외광으로 변화하는 색채를 표현하며, 빛과 색채의 인상주의 원칙을 고수하였습니다. 
하루종일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계속 빛을 보며 작업했기 때문에 그의 눈은 엉망이 되었고 결국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게 되었습니다. 
일부에서는 모네의 독창적인 화풍이 그의 백내장과 연관되어 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Water Lilies and the Japanese bridge, 1897–99, Princeton University Art Museum









-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Water Lilies and Reflections of a Willow (1916–19), Musée Marmottan Monet










-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The Japanese Footbridge, 1920–22, Museum of Modern Art





많은 아픔과 사회 전반적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이 시기에,
예술이 조금이라도 위안과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