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 시인선 R 11. 한국 현대 시사에서 시적 방법론에 대한 가장 첨예한 자의식을 지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시의 언어와 구조'의 문제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탐구했던 시인 오규원. 30여 권의 저서를 통해 언어로써 세계의 구조를 갱신하고, 죽음에 이르는 병마와 싸우는 내내 시적 언어가 가닿을 수 있는 최대치의 투명성을 보여주었던 그가 우리 곁을 떠나 강화도 전등사 소나무 아래에 잠든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오규원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 속 시와 언어의 존재론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누구보다 앞서 던지며, '이념''관념', '주관''감상'에 경사되어온 한국 현대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본격적으로 진행시킨 장본인이다.

 

전통적인 시의 문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적 경향을 모색하는 데 전념했던 그의 첨예한 시론은 '관념의 구상화 - 관념의 해체/해방 - 현상 읽기 - 날이미지'라는 미학적 입장으로 나아가며 그를 한결같은 한국 현대시의 전위로 있게 했다. 그의 '시론'으로서의 이론적 가치뿐만 아니라 시 창작 교육의 교본으로 익숙한 <현대시작법>(1990)은 실제 습작에 대한 사례 분석과 시적 언술에 대한 실질적인 분석으로 개념적인 시론의 한계를 돌파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20여 년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몸담으며 유수의 많은 제자 작가, 시인들을 길러낸 훌륭한 선생이기도 했던 그의 10주기를 맞아 첫 시집 <분명한 사건>'문학과지성 시인선 R'의 열한번째 시집으로 다시 펴낸다.

 

변함없는 한국시의 전위, 오규원의 첫 시집, 46년 만에 복간! 한국 현대 시사에서 시적 방법론에 대한 가장 첨예한 자의식을 지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시의 언어와 구조의 문제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탐구했던 시인 오규원(1941~2007). 10권의 시집과 4권의 시론집.시 창작이론서를 비롯한 30여 권의 저서를 통해 언어로써 세계의 구조를 갱신하고, 죽음에 이르는 병마와 싸우는 내내 시적 언어가 가닿을 수 있는 최대치의 투명성을 보여주었던 그가 우리 곁을 떠나 강화도 전등사 소나무 아래에 잠든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오규원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 속 시와 언어의 존재론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누구보다 앞서 던지며, ‘이념관념’, ‘주관감상에 경사되어온 한국 현대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본격적으로 진행시킨 장본인이다. 전통적인 시의 문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적 경향을 모색하는 데 전념했던 그의 첨예한 시론은 관념의 구상화’-‘관념의 해체/해방’-‘현상 읽기’-‘날이미지라는 미학적 입장으로 나아가며 그를 한결같은 한국 현대시의 전위로 있게 했다. 그의 시론으로서의 이론적 가치뿐만 아니라 시 창작 교육의 교본으로 익숙한 현대시작법(1990)은 실제 습작에 대한 사례 분석과 시적 언술에 대한 실질적인 분석으로 개념적인 시론의 한계를 돌파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20여 년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몸담으며 유수의 많은 제자 작가, 시인들을 길러낸 훌륭한 선생이기도 했던 그의 10주기를 맞아 첫 시집 분명한 사건문학과지성 시인선 R’의 열한번째 시집으로 다시 펴낸다. 초판이 발행된 지 46년 만에 새 옷으로 갈아입은 분명한 사건읽기는 오규원의 시적 존재가 여전한 현재형으로 살아 숨 쉬는 기억과 호명의 자리에서, 평생에 걸쳐 언어를 대상이나 수단이 아닌 실존의 문제로 여겼던 시인의 언어 탐구의 발원지로 되짚어가는 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분명한 사건’, 오규원의 시의 시원(始原)에 닿는 시간. 오규원은 1965년 봄 현대문학겨울 나그네1회 추천을 받고, 1967우계(雨季)의 시2회 추천을 거쳐, 196810월에 몇 개의 현상으로 3회 완료 추천을 받아 시단에 데뷔했다. 분명한 사건(초판 1971, 한림출판사)은 등단한 해를 전후로 7년간(1964~1971) 쓴 시들에서 30편을 추려 묶은 그의 첫 시집이다. 첫 시집이 나온 그해는 시인의 연대기에서 전기로 기록될 만한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다. “불화와 궁핍의 근원이었던 부친의 죽음과 마주해야 했고, 법대 졸업 후 다니던 출판사 편집부를 떠나 노골적인 자본주의의 대표적 현장이랄 수 있는 대기업 홍보실로 근무처를 옮겼다. 1970~71년에 걸쳐 계간지 문학과지성에 작품을 재수록하면서 김현.김병익 등 문지 그룹과 교우를 맺기 시작했고, 쌍문동에서 개봉동 근처로 거주지를 옮기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에 앞서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한 직후 부산 사상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이듬해 동아대 법학과 전공을 시작한 행보는(1961~1968) 그에게 말의 효용성, 추상성, 구속력 등등을 체험하게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삶의 터전과 내면의 변전이 한데 일어나던 무렵에 나온 분명한 사건은 이후 장시 김씨의 마을이나 순례연작을 완성하기 이전, 등단 초기부터 계속된 언어와 세계의 관계에 대한 시인의 고민을 오롯이 담고 있다. 시인 스스로, 1968년 가을에 시작해 이듬해 봄에 완성한 시 현상실험을 예로 들며 언어 또는 표현의 불명확성과 애매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고백하고 있다.

 

언어는 추억에/걸려 있는 /18세기형의 모자다” “망명 정부의 청사처럼/텅 빈/상상이며 가끔 울리는/퇴직한 외교관댁의 초인종이라고 작품에서 말하고 있듯, 여기에서의 언어들은 낡았지만 그래도 아름다움과 나름대로의 권위를 지닌 존재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저는 언어의 힘과 아름다움을 믿으면서도 현실의 언어 또는 의 언어는 낡았음을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었던 것으로 여실하게 읽힙니다. 언어의 힘과 아름다움을 믿고 있었다는 흔적은 모자라든가 정부라든가 외교관이라든가 하는 것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장시 김씨의 마을이 씌어졌으며,”

 

그가 분명한 사건을 쓸 무렵에는 그의 의식은 비교적 순수했어요. 언어에 대한 믿음이 깊었다고나 할까, 혹은 시에 대한 인식이 그랬다고나 할까요. 하나 대상을 명확히 묘사하려고 할 때 언어는 항상 대상의 편이 되어 그로부터 멀어져갔지요. 결국 그는 자신이 틈입할 수 있는 글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분명한 사건의 언어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일에 한해서는 그의 편이었지만, 그 자신의 삶을 표백시키고 있었다는 점에 있어서는 그를 배반하고 있었지요.”

 

이러한 반성은 이후의 시들에 삶의 현장이 적극적으로 들어오게 되는 단서로 읽힌다. 1970년대 관념성이 짙던 그의 시세계는 점차 관념이 구체적인 사회적 내용을 갖추면서 시의 산문화 경향으로 이어지는 등 새로운 한국 시의 해체를 맞게 된다. 작품에 거주지가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 한 요인이다. “투명한 심상의 세계를 다룬 시들은 세계는 분명해지는데 개인(시인)의 삶이 표백된다는 오규원의 저 반성은 이후 순례연작시들로 나아가고, 현실과 사물의 현상을 주목하는 시학적 탐구를 거치며(사랑의 감옥), 오랜 관념과의 싸움 끝에 날이미지시라는 극점에 다다른다.

 

이번 복간 시집에는 35년간 그와 문우로 지낸 문학평론가 김병익의 발문 오규원에게 보내는 뒤늦은 감사와 송구가 함께한다. 군사정권의 개발 독재와 유사 자본주의가 개인과 사회 모두를 강압하던 40년 전으로 기억을 되감는 이 글에서 김병익은, 잡지 간행이 녹록지 않던 시절, 당시 태평양화학 홍보실에서 일하던 오규원이 경제적으로 문지에 도움을 준 사연을 비롯해, 40여 년을 이어 오는 문지시인선의 디자인 장정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6),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1978) 등의 표지를 오규원이 직접 맡게 된 일화와 추억들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사물에 대한 그의 극도의 정밀성을 근접촬영 수법으로 획득하여 나름의 방식으로 개념화한 날이미지의 시들에는, “오직 투명한 시선과 거기에 포착된 사물의 순수한 형상과의 직절한 교호만이 존재했다. 그 극도의 객관성을 통해 역으로 그는 이 세상의 유정(有情)한 공감을 감염시키고 있는 것이었다는 비평적 시선으로 옮겨간다. 생명의 소진에 다가선 오규원과의 영원한 작별을 돌아보는 자리를 말 없는 우정으로, 다시 분명한 사건으로 복원해내는 글 말미의 소회는 깊은 감동을 전한다


(정보제공 : 알라딘도서 / 문학과지성)